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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 아동이 수어를 배우면 말을 못하게 될까?
청각장애 아동이 수어(수화언어)를 배우면 말을 못 하게 될 거라는 오해가 아직도 많습니다. 실제로 부모님이나 교사들 사이에서도 “수어를 먼저 가르치면 말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국내외 연구들은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1. 수어를 배우면 오히려 ‘말’도 잘하게 된다?
미국 언어청각학회(ASHA)의 학술지 Journal of Speech, Language, and Hearing Research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수어(ASL)를 조기에 습득한 청각장애 아동은 ASL뿐만 아니라 구어(말) 어휘 능력도 연령에 적절한 수준으로 발달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는 수어가 단지 '손으로 표현하는 언어'가 아니라, 뇌의 언어 영역을 자극하고 언어 구조에 대한 이해를 돕는 중요한 수단임을 보여줍니다.
즉, 수어를 배운다고 해서 말을 못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수어를 통해 언어 자체의 개념을 익히고 소통 경험을 쌓음으로써 오히려 구어 능력도 함께 향상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기 언어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지요.
2. 수어와 구어는 서로 돕는 관계
다른 연구에서는 수어 사용이 전반적인 언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내용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아동은 시각적 주의를 말하는 사람에게 집중하게 되고, 이는 의사소통의 핵심 기술인 ‘공동주의(joint attention)’를 발달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이러한 시각적·사회적 자극은 단순히 수어에 그치지 않고, 아이가 상황을 파악하고 말하는 사람과 연결되도록 돕는 중요한 경험이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이 구어 능력 향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3. 언어의 선택은 권리의 문제입니다
청각장애 아동에게 수어를 제공하는 것은 단지 언어 습득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 접근권'이라는 인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언어를 배우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회와 보호자의 중요한 책무입니다. 수어와 구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아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열어줄 수 있는 다양한 언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출처:
- ASHA 학술지 - Early Language Experience Supports Vocabulary Development in Children Who Are Deaf or Hard of Hearing
- PMC 논문 - The Relationship Between Language Input and Language Outcomes in Children Who Are Deaf or Hard of Hearing
4. 유튜브 영상 추천
청각장애 아동의 수어 학습이 구어 발달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다룬 유용한 유튜브 영상도 추천해 드립니다.
“Early exposure to ASL does NOT hinder spoken language development”
이 영상은 미국 수어(ASL)에 조기 노출되는 것이 구어 발달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수어와 구어의 병행 학습이 아동의 전반적인 언어 능력에 어떻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참고: 미국수어로 진행되며 자막이 제공됩니다.)
결론
수어는 단순한 ‘손짓 언어’가 아닙니다. 아이가 세상과 연결되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언어’입니다. 수어를 배우는 것이 말을 배우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동의 전반적인 언어 발달에 튼튼한 기초가 되어 줍니다.
수어를 배우는 것, 그 자체로 아이에게는 큰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청각장애 아동에게는 수어와 구어 모두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합니다. 언어의 다양성은 아이의 가능성을 키우는 토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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